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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문학

모래의 여자- 아베 코보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


이 작품의 핵심은, ‘자유라는 개념으로 압축되고 있는 듯 하다. 선생님으로서의 일상을 도피하기 위해 찾은 사막, 모래 구덩이에서 벗어나려 하는 몸부림은, 니키 준페이의 자유를 향한 사투를 매우 고요하게 그리고 칼 날 같이 부는 모래바람처럼 신경질적으로 계속된다.

 인물 준페이에 감정몰입을 하여, 아베 코보가 묘사한 한 사람의 자유에 대한 지독한 욕망이라는 것이, 결국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는 인간의 본모습이 투영된 인물상이라는 깨달음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고, 나에게 있어 자유란 어떤 개념이며 어떤 구체적인 형상을 갖고 있는 가에 대해 되돌아볼 수 있었다.


등장인물들, 자유를 쫓는 니키 준페이, ‘걷지 않아도 되는 자유만으로 충분한 여자, 애향정신으로 똘똘 뭉친 촌락 사람들의 저마다의 신념과 고집으로부터 깊은 인상을 받았다. 더불어 나 또한 고등학교 시절 인근의 사구를 실험장소로 하여 천연기념물 쇠똥구리’ 에 관심이 깊었기에, 묘사된 사구와 촌락, 모래구덩이의 모습에 나름의 감동을 받아 1964년에 제작된 영화"모래의 여자"(감독, 테시가하라 히로시)까지도 찾아보게 되었다





소설에서는 인물의 심리 흐름을 이성적으로 쫓아갈 수 있었던 것에 비해, 영화에서는 스르르 흐르는 모래, 음산한 바람, 숨소리에 집중하게 되어 원초적인 인물의 감정표현에 이입할 수 있었다. 거기에서 받은 준페이의 분노와 여인의 평온함 때문인지, 모래의 여자』에 대한 자유에 관한 나의 감상도 다소 변화가 있었다.


인간은 보통 스피노자가 본질적인 자유로 간주한 코나투스, 외부와 단절된 주체적 자아로부터의 의지적 행위를 발견하기 위해 노력하며, 또한 소수의 사람들은 그것을 이루기까지 한다. 자유를 추구하고 성취한 것에 대한 판단은 스스로만이 할 수 있는 범위라고 생각은 하나, 준페이나 여인의 모습에서 이 진정한 자유의 존재에 대해 의구심이 들었다.


원인과 결과 혹은 동기와 목적과 같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인간관계, 공통의 현상에 개입되어 있는 서로 다른 객체들이 상호 보완적으로 교류하여 생겨나는 행위는 곧 외부의 타인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발현된 명백한 타자적 행위이므로, 나 자신으로부터 발원되어 실현된 행위와는 분명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준페이는 최초에는 성장하여 희망을 갖고 졸업하는 학생을 보며 환멸을 느끼고 자신의 이름을 식목도감에 올리기 위해사막으로 떠나고, 최후에는 물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사막에 남는다. 만약 아베 코보가 말하고자 한 것이 인간의 자유의지 혹은 욕망이라면 그 의미를 나는 이해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나는 인간이 추구하는 진정한 자유는 존재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한 인위적인 희망만이 존재함을 느꼈다. 또한, 이기적 발상이 내포되지 않은 이타적 행위 또한 없음을 깨달았다

곤충을 찾는 행위, 마을 사람들에게 물 공급 방식을 알리려는 행위는 결국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인정받기 위한 행위라고 볼 수 있으며, 또한 아무 욕심 없이 있는 그대로 순응하며 살고 있는 듯한 여인마저도 모래를 파지 않으면 마을 사람들이 관심이나 주겠냐라고 이타적 행위에 담긴 이기적인 마음을 드러내는 장면은 꽤나 충격적이다.





 ‘ 막상 일을 시작해보니, 생각했던 것만큼의 저항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이 변화의 원인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물 배급이 중단될까 봐 두려워서 인가, 아니면 여자에 대한 자책감 때문인가, 아니면 또 노동 자체의 성격 때문일까?

과연 노동에는, 목적지 없이도 여전히 도망쳐가는 시간을 견디게 하는, 인간의 기댈 언덕 같은 것이 있는 모양이다. ’

 

유동' '자유'를 갈망했건만 모래땅에서 또다시 '정착' '감금'을 강요받고, 또 그 속에서 '자유'를 찾아 유동하는 한 인간을 통해, 아베 코보는 변덕스러운 인간의 자유에 대한 환상과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안주하고 또 그 나름의 목적을 찾고자 하는 자유가 아닌 희망을 갈구하는 인간상을 그린 것인지도 모른다.